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에서는 서울도성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 ‘서울, 도성을 품다’ 특별전을 2011년 10월 12일(수)부터 11월 20일(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최근 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양 도성의 역사와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살펴봄으로써 시민들이 도성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도성의 탄생과 운영”, “도성의 훼손과 수난”, “도성의 복원과 발굴”, “도성과 나”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서울이라는 말이 곧 수도였듯 서울을 둘러싼 도성은 도시와 동의어이다. 동양의 도시조영전통에서 도성이 없는 도시는 있을 수 없다. 도성은 500여 년간 한양의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도성민들의 삶 속에는 도성문이 여닫히는 리듬에 따른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도성의 탄생과 운영에서는 태조대의 도성 축조와 완성, 그 뒤 역대 왕들의 정비를 통한 도성체제 완비의 역사적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남대문 약도 간찰”을 전시한다. 이 유물은 서울 남대문 근처에 사는 아버지가 시골에 사는 아들에게 복잡한 남대문 지역을 약도로 그려 안내하는 편지이다. 이를 통해 도성 내 백성들이 얼마나 도성과 밀접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살펴 볼 수 있다.
지금도 잘 남아있는 한양도성의 각자성석은 조선시대 도성축조에 공사실명제가 도입되었다는 직접적 증거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자성석 130개가 탁본을 통해 한자리에 공개된다.
도성의 훼손과 수난에서는 “조선신궁조영지”와 “조선신중사진도집”이 소개된다. 여기에 수록된 조선신궁 평면도와 사진은 조선신궁 건설로 인해 어떻게 도성이 파괴되었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오랫동안 한양과 다른 지역을 구분짓는 경계였던 도성은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도시발달을 저해하는 전근대적인 요소로 인식되어 수난을 겪었다. 일제는 도로를 낸다는 명목으로 성과 성문을 허물었고, 한일합방 이후에는 조선신궁과 동대문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도성을 유린했다. 해방 이후에도 독재정권의 통치 반공 이데올로기 전파, 개발을 위한 도성의 사유지화, 한국전쟁 이후 빈곤 등으로 인해 도성이 허물어지는 일은 계속 되었다.
도성의 복원과 발굴에서는 더 이상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닌 복원을 위한 발굴의 역사를 전시하였다. 동대문 이간수문 발굴 중 출토된 “목책” 등이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또 동대문역사문화공원부지, 남산 아동광장과 백범광장부지에서 출토된 미공개 유물이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을 둘러싼 네 산을 따라 자연스럽게 축조된 도성은 지독한 파괴의 역사를 거쳐 왔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서울을 역사와 문화도시로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접근금지구역이 시민에게 개방되고, 끊어진 도성을 잇는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이제 도성은 훼손의 대상에서 복원의 대상으로, 폐쇄의 공간에서 소통의 공간으로 시민의 품에 돌아오고 있다.
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사성 회복을 위한 발굴과 학술조사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제 도성은 서울시민이 즐겨찾는 명소에서 한걸음 나아가 세계에 자랑할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주변에서 도성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도성과 나에서는 도시인의 생활과 여가 속에 녹아든 도성의 모습을 수년간 촬영한 300여장의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