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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진

이슈&화제

by 윤재훈 2008. 4. 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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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292호로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되는 어구인 손돌항에 천험의 요새를 이용한 군사의 요충이고 임진왜란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 선조때 창설된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조 숙종 8년(1682) 3월까지 월곶진이 주진이었으나 그 후 덕포진을 주진으로 승격하여 영종과 안흥진을 관장하게 하였고 숙종 20년(1694) 통진현이 도호부로 승격하면서 덕포진도 강화도로부터 통진으로 종삼품의 수군첨사가 수군 316명을 지휘했으며 부에서 전속 수영거리는 15리에 이르렀다.

고종8년(1871) 9월 편집된 통진읍지에는 덕포진은 군사상으로 강화 통어영에 속하고 행정상으로는 통진에 속하였으며 첨사 1명과 수군 316명, 그리고 방선 2척,병선 1척, 사후척 3척이 소속되었다. 그리고 건물로는 객사가 2칸, 내외진사가 9칸과 삼문과 행랑이 10칸반, 어변정 10칸이 있었고 신미양요 후에 증건한 파수청 4칸을 건립하였고 광무3년(1899)에 편집된 김포읍지 및 지도성책에 따르면 1876년 봄 손돌항 포대 15기를 건립하여 국토방어 시설을 갖추게 하였다.

1980년 발굴 작업을 하여 복원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당시 발굴된 중.소포 6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문, 덕포진 유물전시관에 2문, 전쟁기념관에 1문, 독립기념관에 1문이 보관중이다.

덕포진포대
덕포진포대는 총 15포대가 발견되었으며 그 지역을 약물터를 <가>포대지역, 원둘터를 <나>포대지역, 굽두리를 <다>포대지역으로 설정하였으며 <가>포대는 7개 포대로 강화 남장포대를, <나> 포대는 강화 초지진을, <다>포대는 초지진과 남장포대를 향하고 있다

파수청
파수청은 각 포대에 공급할 불씨를 보관하던 장소이다.
문헌조사에 의하면 사적지내 건물은 탄약고, 파수청이 존재하였음을 알수 있으나 현재 탄약고는 덕포마을에 이전 위치하고 잇고 사적지 내에는 파수청만 존재하고 있다. 건물규모는 정면 3문, 측면 2문이며 중심부에 화덕이 위치한다. 발굴당시 동서면에서 석벽으로 둘러 쌓여있었던 것으로 봐서 출입구는 동서면이 아닌 남북면을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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