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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상상을 초월한 인간경영으로 시대를 앞서 산 삼국시대의 21세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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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2008. 2. 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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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조조만큼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 인물이 또 있을까?
엄연히 한 시대를 좌우한 중원의 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래도록 '간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실용주의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상상을 초월한 인간경영을 펼친 놀라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그는 탁월한 지성과 풍부한 감성, 시대를 앞서 산 자유로운 사상과 놀라울 정도의 솔직성으로 수많은 문화 콘텐츠의 매력 넘치는 주인공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1) 각종 문화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부활한 조조

  오래도록 '간웅'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던 조조가 시대를 앞서 산 매력 넘치는 영웅의 캐릭터로 부활하고 있다. 아예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를 새롭게 해석한 게임 <삼국지 조조전>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 만화 <창천항로>에서는 분명 역사의 기록 속에 남아 있는 못생긴 그의 용모조차 아예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사랑 받는 '꽃미남' 캐릭터로 바꾸어 놓았을 정도다.



조조의 초상화

실제로 그는 각종 문화 콘텐츠의 매력 넘치는 캐릭터다. 단순히 뛰어난 용병술이나 매서운 법의 집행 등에서 보여지는 탁월한 전략가로서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솔직성에 수반한 풍부한 감성 등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역사 속 그 어떤 인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를 중원의 패자로 만들어 준 것은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탁월한 재능을 바탕으로 한 상상을 초월한 인간 경영이었다. 
그는 시대의 속박에서 벗어나 언제나 '인간'이라는 본질에 입각해 현실의 모든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했고, 대담한 실천으로 최단의 지름길을 찾아냈다. 역사는 그의 이런 모든 행동을 '간웅'으로 기록했지만, 실제로 그 시대의 수많은 인재들은 그를 인정하고 그의 휘하에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며, 그는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그는 분명 삼국시대를 살아간 21세기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 산 놀라운 영웅이었다. 그가 수많은 문화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 조조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키워드, '만능의 르네쌍스인' 조조

조조는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지혜가 남다른 인물이었다.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그는 "낮에는 군사전략을 궁리하고 밤에는 유교 경서를 읽으며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더구나 조조는 궁전 건물을 짓거나 기계 설비를 만들 때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했는데, 모두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서예와 장기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으며, 직접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아 후세에 전할 정도로 뛰어난 지식이었다고 한다. 조조가 정리, 해설한 손자병법은 <위무주 손자병법> 즉 위나라의 무제인 조조가 주석을 단 손자병법이라고 불린다. 한마디로 그는 사상, 음악, 건축, 기계 제작, 병법 연구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만능인이었다. 21세기에 주목받는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인'이었던 것이다.



각종 게임과 만화의 매력 넘치는 주인공으로 부활한 조조의 캐릭터

또한 그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둔전제'를 시행한 인물로도 높이 평가된다. 둔전제는 일정 규모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농기구와 씨앗, 식량 등을 국가가 내주어 안정적으로 농사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오랜 전란에서 농토가 황폐해지고 농민들은 유랑으로 떠돌던 후한 말기, 이 둔전제는 백성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 준 제도였다. 


또한 국가의 입장에서도 호족들이 대규모의 토지를 차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유사시 농민들을 군인으로 투입시킬 수 있는 이른바 '병농일치'를 가능케 한다는 이점이 있었다. 말 그대로 Win-Win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셈이다. 조조의 위나라가 훗날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런 탁월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다.


3) 조조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키워드, '시인' 조조

  

역시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시를 읊조리고 새로운 시가 나오면 음악에 맞추어 노래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그는 악부시라 불리는 시문학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남긴 당대 최고 수준의 문학가였다. 조조 자신은 물론 그의 아들 조비와 조식 삼부자가 모두 문학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이들 삼부자를 역사는 '건안 문학의 부흥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후한의 마지막 화제인 건안 시대의 문학을 지칭하는 '건안 문학'의 특징은 문장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사람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었다. 또한 전란의 비참함을 노래하면서도 흥겨움을 잃지 않는 '멋스러움'도 그 특징 중 하나다. 이런 특징은 그대로 기개가 높으면서도 서정성이 풍부하고 인간에 대한 풍부한 이해심을 가진 '조조'의 성격을 대변해 준다.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진 그에 대한 평가는 조조의 이미지를
시대를 앞서 산 매력 넘치는 영웅으로 바꿔 놓고 있다.

조조의 이런 문학가적 자질은 유교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당대의 다른 인물들과 크게 구별되는 발상의 자유로움을 그에게 심어 주었다. 조조의 위나라가 하드적인 면은 물론 문화 등의 소프트적인 면에서도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조조의 문학적 풍부한 감성과 자유로운 발상에 힘입은 것이다. 그리고 조조와 위나라의 시대를 앞선 소프트 경쟁력이야말로 삼국통일을 이뤄 낸 진짜 에너지였다.


- 필자

김민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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