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석진(金奭鎭, 1843.1.21~1910.9.8[음])선생을 2012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2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의 호패 등 관련자료 7점이 전시되며, 같은 내용이 독립기념관 인터넷 홈페이지(학습마당 ⇒ 이달의 독립운동가)에도 소개된다.
선생은 1843년 경기도 광주에서 아버지 낙균과 어머니 남원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오천(梧泉)이다. 1860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선생은 승정원·홍문관·사간원·호조·사헌부·성균관·규장각 등을 거쳐 벼슬이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황후의 죽음과 나라가 처한 어려움에 대한 통분으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후 나라만을 걱정하며 울분 속에서 지내던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을사5적의 처벌과 을사늑약의 파기를 광무황제에게 주장하는 등 적극적인 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일제에 의해 광무황제가 강제퇴위 당하고, 군대마저 강제해산 되었으며, 1910년에는 나라마저 잃게 되는 등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일제는 남작 작위를 수여함으로써 선생을 회유하려 하였으나, 선생은 이를 수치로 여겨 그해 9월 8일 자택에서 음독, 순국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