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주는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로서 정치, 경제는 물론 국방과 교통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행정구역이었다. 그 영역도 지금의 양주 뿐만 아니라 교통에 잇어서도 동두천, 남양주, 구리, 의정부시 등 경기 동북부와 서울의 노원, 도봉, 중랑, 성동, 은평구를 포함하고 잇었다.
현재의 관아지는 양주가 양주목으로 승격(1466년, 세조 12)된 후, 1506년(중종1)부터 1922년까지 417년간 양주목사가 머물럿던 양주 행정의 중심지였다. 동헌(1997년 복원)과 양주목사송덕비, 금화정(1996년 복원), 어사대비 등이 남아잇으며 현재 관아지의 예 모습을 찾기 위한 발굴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