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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에서의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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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2008. 2. 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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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시초

  아득한 먼 옛날... 우주의 최상천에는 하늘 세계가 있었다. 시베리아의 하늘에는 하느님이 계셨는데 홀로 신이 돼 광명으로 천하를 비췄다. 인류의 최초의 시조는 나반으로 처음에 아만을 만난 곳이 아이사타(시베리아)였다. 어느 날 나반은 꿈에 천신을 만나 계시를 받았다. 이들은 혼례를 치루고 맑은 물을 떠놓고 하느님께 고했다. 남쪽에서 주작이 와서즐거워 했다. 북녘에는 신기한 거북이 상서를 드리우고 서쪽산 모퉁이에 백호가 나타나 지키고 동쪽에는 청룡이 공중으로 올랐다. 황웅도 그곳에서 살았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의 시조가 대부분 신격화되어 있고 그들의 이야기는 거의 모두 신화화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화 속에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렇게 역사를 신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철학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본문에서 인류의 시조를 나반과 아만이라고 했는데, 나반은 우리말 '하나반' '하나버지' '할아버지'와 관계있는 어원이며, 아만은 '어미' '어마니' '어머니'와 관계되는 어원으로 볼 수 있다. 또 나반과 아만이 처음 만난 장소를 아이사타라고 했는데, 이 지명은 후에 단군 왕검이 도읍으로 정했다는 아사달과 관계가 있다. 즉 '아이사타'에서 '아사달'로 전음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사달'에서 '아사'는 '아침''처음'첫''새로운''광명''동녘''동방''태양'등을 의미하는 고대의 우리말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아침을 '아사'라고하는데 이 역시 고대 우리말이 그대로 옮겨간 것이다. '아사달'에서 '달'은 '땅''벌판''대지''산'등을 의미하는 말로, 현재까지도 음지를 '응달', 양지를 '양달'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아사달'의 원래 어원인 '아이사타'의 잔영은 지금도 중앙아시아 여러지역에 남아 있는데, 예를 들면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등의 국명에는 '-이스탄'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이 역시 '아이사타'에서 비롯된 것이며, 터키의 '이스탄불' 역시 동일한 어원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이다. 특히 '이스탄불'이 '해뜨는 동방'을 의미하는 말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설명은 더욱 신빙성을 얻는다. 산을 몽고어로 '타우'라고 하는데, 이 역시 '달'과 같은 뜻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사타'에서 '아사달'로 전음되었다가 다시 '알단''아덴''아르덴''아나톨리아' 등으로 변천되어 아시아와 유럽 곳곳으 지명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환인의 시대

  인류가 생긴지 오랜후에 환인께서 내려와 나라사람들로 부터 추대되어 안파견 또는 거발환이라고 불렸다. 안파견이란 하느님을 이어받아 아버지를 세운다는 뜻이고, 거발환은 천, 지, 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호칭이다. 환인은 BC 7199년경 (일설엔 BC 7197)지금의 시베리아 지역에 환국(桓國)을 세웠다. 이로부터 환인의 형제 아홉이 나라를 나누어 다스렸으니 이를 9황(皇) 64민(民)이라 한다. 환국의가역은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서쪽은 알타이산까지, 남은 몽고 동남쪽으로는 만주까지 뻗치는 큰 나라였다. 환인은 하늘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순리와 도리에 따라 인간사회를 다스렸다.

  환인은 백성들에게 다섯가지 가르침을 폈다.
 첫째는 성실하여 거짓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경건하고 근면해야 한다.
 셋째는 효도하고 순종해야 한다.
 네째는 의로우며 음란하지 말라.
 다섯째는 겸허하여 싸움하지 말라.

  환국은 12개의 나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것은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 필나국(畢那國)이라고도한다),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 직구다국(稷臼多國)이라고도 한다.),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이국(鮮裨爾國 : 시위국(豕韋國) 혹은 통고사국(通古斯國)이라고도 한다),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다. 12환국중 우루국과 수밀리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개척한 슈메르(sumer)족과 우르(ur)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들은 환민족의 지파로 중동에 진출, 원주민이었던 악카드족과투쟁하다가 망했다. 슈메르족의 문화 풍습은 고대 동이족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슈메르인의 벽화에는 씨름을 하는 그림이 있는데 고대 동이족의 씨름모습과 흡사하다.)

  환국의 역대 환인은 7세를 전했으며 그 전체 역년이 3,301년에 이른다고하였는데, 실제로는 7세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7세에 3,301년이라며 1세에 평균 450년이 되는데, 이것은 7세의 역년이라기보다는 환국이 당시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안정되지 못하다가 나라가 자리를 잡고 난 뒤에 7세를 전했으며 그 이전의 역년까지 합해서 3,301년이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혹 그렇지 않다면 7세 이외에는 기록이 소실되었거나, 아니면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7世 환인(桓因)의 계보
  제 1 세   안파견(安巴堅) 환인
  제 2 세   혁서(赫胥)     환인
  제 3 세   고시리(古是利) 환인
  제 4 세   주우양(朱于襄) 환인
  제 5 세   석제임(釋提壬) 환인
  제 6 세   구을리(邱乙利) 환인
  제 7 세   지위리(智爲利) 환인

환웅의 시대배달국(倍達國)

환국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걸친 큰나라였으나 BC4000년경부터 시베리아의 기후가 급강하 하게 된다. 이때 하늘의 하느님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곳을 삼위산과 태백산이라 보고 아들중 환웅에게 천부인 삼종을 주고 지상에 내려가 세상을 다스리도록 했다. 또 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세신을 삼위태백이라 했는데 이들도 환웅을 따라 지상으로 하강했다. 이것은 환웅이 환국에서 분가하여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에 나라를 세우고 정착한것을 말한다. 그 도읍은 신시(神市) 라 했으며 국호는 배달이라 했다. 환웅은 흔히 곰으로 알고 있는 웅족의 연인을 거두어 왕후로 삼고 혼인의 예법을 정했다. 또한 인간들에게 390여가지의 일을 주관하였고 무지한 백성들을 문명화 시키며 홍익인간의 도(道)를 펼치었다. 그리고 짐승의 가죽을 화폐로 삼고 종자도 심고 가축을 기르게 했다.
  환웅이 어느 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는데 호랑이 한마리가 숲속에서 뛰어 나왔다. 이때 신하가 돌을 던졌다. 돌이 바위에 맞자 불꽃이 이는 것을 보고 환웅이 돌을 부딪쳐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이로부터 음식을 날로 먹지 않고 구워서 먹었다. 신하 신지는 환웅의 명을 받아 사물을 문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구상하던중 어느날 사냥을 갔다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최초의 문자를 고안해냈다. 환웅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선포하였다. 환웅족은 정기적으로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제천이라고 불렀다. 제천이 있는 날에는 온 백성이 모여 며칠동안 춤, 노래, 음주를 즐겼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기와 외풍이심한 동굴과 토혈에서 살고 있었다. 환웅천왕이 왕금을 시켜 사람이 살 집을 짓고 남녀간에 혼인의 법도를 정하였다. 그는 인구가 늘어나자 고시례에게 명해 곡식을 심게 했는데 피, 삼, 기장, 보리, 콩 등이 었다

  배달국 제 5세 환웅 태우의 환웅은 호를 복희(중국 삼황중의 하나)라고 했다. 복희는 청구와 낙랑을 경유하여 오늘날 중원에 진출해 수인, 유소와 함께 나라를 세웠다. 이 때는 BC3500년경으로 동이족의 본격적인 중원 진출이 시작된다. 지금 산동성의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복희씨의 능이 있다. 당시 중국은 인구 밀도가 극히 낮고 기름진 땅이 펼쳐 있고, 기후조건이 온화하였다. 배달국 백성뿐만 아니라 타지역의 원시민족들도 중원으로 모여들었다.

  배달국의 제 14세왕 자오지천왕은 치우천왕이라고 불렸다. 이때가 BC2707년으로 치우천왕은 오늘날 화북지역에 근거지를 정하고 군사력을 양성하였다. 청동기 문명은 동이족이 창조한 문명이다. 치우천왕은 땅속에 있는 청동과 쇠, 금을 캐내 각족 무기를 제작하여 중원의 여러 민족을 제압하기 시작하였다. 돌검과 돌창이 아닌 청동검과 창으로 무장한 치우천왕의 군병들은 섬서성에서 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지나족을 포함한 이민족들을 가는데마다 격파하였다. 기록에는 "시체가 들에 가득찼다"고 나와있다. 그 때, 중원에는 토착민(지나족)의 우두머리 황제 헌원이 있었다. 황제는 동북지역의 치우천왕에 대항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쇠비늘을 달아 만든 갑옷과 쇠뇌의 위력을 당해낼 수 없었고 그 때 중원민족들은 "치우의 머리는 구리요, 몸은 쇠로 되었다"고 했다. 북경근처의 탁록에서 크게 이긴 치우의 군대는 기주와 연주, 회대의 땅을 함락하였다. 회대는 오늘날 산동반도와 서쪽지역이다.
  치우천왕은 10여년간 무려 1백회를 싸워 황제헌원군을 제아하였다. 황제 헌원도 신시의 군대를 본받아 병갑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치우천왕의 명성과 위용은 수천년간 전해내려왔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황제 헌원이 편하게 살지 못하고 탁록하에 읍을 정했으나 이리저리 쫓겨 다녔다고 기록돼있다. 천제의 아들로서 존경받았던 치우천왕은 돌맹이를 날려보내는 비석박격기를 발명하여 중원의 여러 민족을 무력으로 제압하였다. 중원의 기름진 평야를 두고 동이족과 지나족의 전쟁은 그 후에도 계속된다.
  치우천왕은 구리와 쇠를 캐어 제련하여 칼과 창 그리고 대노를 만들어 수렵도 하고 전쟁을 했다. 외족들은 치우 천왕을 신으로 알고 매우 두려워했다. 동이족은 활을 잘 쏜느 민족으로 이름 나 있었으며 특히 쇠뇌라고 불리우는 대노는 한꺼번에 여러게의 화살을 쓸수 있는 무기이다. 중원의 지나족들은 이에 우리겨레를 이(夷 = 大 + 弓)라고 불렀다. 이 기록으로 보아 동이족이 청동과 쇠를 제련하는 기술은 BC3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치우를 황제 헌원이 죽였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치우천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치우의 장수였던 치우비가 전투중에 전사한 것을 왜곡한 것이다.

  환웅시대인 배달국의 역사는 18세에 전체 역년은 1,565년에 이르렀다.



 
신시 배달국 역대표(神市倍達國歷代表)

왕 대
환 웅 명
재 위 년
즉위년(B.C.)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환웅(桓雄), 거발환(居發桓)
거불리(居佛理)
우야고(右耶古)
모사라(慕士羅)
태우의(太虞儀)
다의발(多儀發)
거 련(居 連)
안부련(安夫連)
양 운(養 雲)
갈고(葛古),독노한(瀆盧韓)
거야발(居耶發)
주무신(州武愼)
사와라(斯瓦羅)
자오지(慈烏支),치우(蚩尤)
치액특(蚩額特)
축다리(祝多利)
혁다세(赫多世)
거불단(居弗檀),단웅(檀雄)
94
86
99
107
93
98
81
73
96
100
92
105
67
109
89
56
72
48
3898
3804
3718
3619
3512
3419
3321
3240
3167
3071
2971
2879
2774
2707
2598
2509
2453
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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