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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그 길에 ‘가을’이 핀다-강진 마량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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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2009. 10. 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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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그 길에 ‘가을’이 핀다-강진 마량 해안도로

 


길 위에서 삶이 피어난다. 뚜렷한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이건, 까닭 없이 나선 길이건 상관없다. 길은 언제나 스스로 깊어져서 사람을 생각의 숲으로 이끈다. 길의 서정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곳이 전라도의 골목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속에는 구원의 염원이 잠들고, 사람살이의 흔적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매일 눈물이 피어나는 전라도의 길, 그 길 위에서 삶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 길과 사람의 관계는 늘 가을빛보다 더 깊다.

 ‘지금쯤 그 길에 가을이 피었겠다.’ 이런 생각으로 나선 길이었다. 강진에서 마량으로 통하는 해안도로다. 만조의 바다 곁에 땅과 가까워지고 있는 벼들이 있다. 벼는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몸을 눕힌다.

 바다는 비어 있다. 갯벌을 삼키고 오랫동안 조용하다. 강진에서 출발한 길은 마량에 닿을 때까지 바다를 옆에 둔다. 가을의 바다, 강진만은 매혹적이다. 길의 흐름 위에 물의 흐름이 같이 펼쳐진다. 처음엔 강이었던 물길은 ‘구강포’을 지나 강진만에 닿는다.

 

 아홉 강물 속 무겁고 고된 문장

 구강포에 가면 알게 된다. 바다가 부푸는 것이나 여자가 배를 불리는 일이나 같은 이치다. 모두 달의 힘이다. 달의 주기와 여자의 주기는 같다. 한 달을 주기로 차고 기우는 달처럼 여자의 몸도 받아들이면서 저문다. 모든 사람은 달의 자식이다.

 해안도로에는 달의 시간 같은 물길이 있다. 탐진강 하류 구강포다. 거기서 아홉 개의 강물이 만나 바다로 스민다. 아홉 고을의 삶이 그곳에 고인다. 아름다운 지명 구강포(九江浦)는 그런 의미이다. 구강포에서는 강과 바다 그리고 하천의 경계가 모호하다. 혹은 아예 없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막힌 데 없이 모두 통하고, 서로 열려 있음을 구강포는 존재의 힘으로 증명한다.

 구강포의 아홉 물을 파악하는 곳은 강진읍 목리다. 거기가 마량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의 시작점이다. 아홉 강이 만난다면 물의 흐름이 거쳐 온 수많은 마을도 함께 모인다는 의미가 된다. 삶이 고인 물, 무겁고 고된 문장이다. 몇 척의 배가 포구에 정박해 있다.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꿈은 내륙에서 바다로 뻗는다. 세상에 나약한 강물은 없다. 그 강은 재첩을 키우고, 장어를 살찌게 한다. 시절이 아무리 변해도 강은 제 할 일을 멈추는 법이 없다.

 아홉 물길의 끝이다. 둘러보면 모두 ‘갯것’이다. 구강포에서는 포구를 넘나드는 배들 사이로 시간이 갔다. 지금은 퇴락의 기운만 서늘하지만 한때 명성을 떨치던 남해의 내륙 뱃길이었다. 강이 바다와 닿는 강진만으로부터 해창, 남포, 목리, 백금포로 이어진다. 일제 때는 좁은 뱃길을 타고 거대한 상선들이 드나들었다.

 어떤 물이건 흘러 그곳까지 이르렀다면 모두 강이다. “탐진강이 욜로 빠져나간께 영암 금정, 장흥 유치허고 부산, 글고 강진 옴천허고 병영, 군동 물이 여그로 올 것이여. 요 부근에서는 대구하고 마량 물이 욜로 오고, 보성강 일부 지류가 여그로 빠진께 아홉 물이지.” 구강포 주민 서현호(74)씨의 말이다.

 
 ▲탐진강의 끝이며 아홉 강물이 모이는 구강포.

 ‘당겨진 활과 같고 찢어진 북과 같은’

 다산(茶山) 선생이 강진 땅 밭들의 생김을 두고 그랬다. <뱀과 같고 소뿔과 같고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고 당겨진 활과 같고 찢어진 북과 같다.>(‘목민심서’) 무엇의 생김이란 것이 그것의 외향만 지칭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흙은 그 내면 속에서 복잡하고 얽히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재차 얽힌다. 관계를 생각하고 그 생김을 다시 살펴보면 복잡한 심리적 이미지와 조우하게 된다. 이미지는 결국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다산 선생의 언급과 내면적으로 비슷한 생김을 가지고 있는 땅이 강진에는 또 있다. 갯벌이다. 아홉 개의 강물이 바다로 향해 가장 먼저 몸을 스미는 곳도 갯벌이다. 강물의 흐름이 멈추는 곳에 바다가 있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대구면을 지나 비사마을 쪽으로 차 머리를 돌리면 갯벌을 옆에 두고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길의 초입에서부터 만나게 되는 갯벌은 서해의 그것과 다르다. 크고 작은 돌덩이들로 뻘이 이루어졌다. 갯벌은 바다의 혈관 같다. 강진만은 굴이 살기 좋은 조건이다. 굴은 돌에 붙어 자란다. 주민들에게는 갯벌이 삶의 밑천이다.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갯벌이 버티고 있는 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갯벌의 몸값으로 대학에 갔다. 갯벌은 자기 안의 무수한 생명만 키우는 게 아니다. 사람도 키운다.

 해안의 길은 마을과 갯벌 사이, 들판과 바다 사이를 뚫고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다가도 어느 순간 바다로 연결된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을 벗어나면 다시 바다를 향해 길이 뻗는다.

 갯벌은 넓고도 길다. 비사마을에서 백사마을을 지나 수인마을까지 5Km를 넘게 갯벌이 이어진다. 그곳에서는 이미 도로와 갯벌의 경계까지도 사라지고 없다. 여기저기 마음대로 뻗은 것처럼 보이는 길도 알고 보면 그 안에 나름의 흐름이 있다. 길의 흐름을 알게되는 순간, 매일 그 길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 길의 끝, 마량에 닿았을 때 그곳 사람들이 갯벌을 통해 살아낸 삶을 얼핏 마주한 듯도 했다.

글=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가는 길: 1번 국도를 타고 나주→13번 국도를 타고 영암→강진읍에서 2번 국도를 타고 순천 방면으로 직진→강진동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2km쯤 가면 구강포→23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마량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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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엔투스 커뮤니티 http://www.nt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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