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 번호 : 사적 제329호
▒ 지정년월일 : 1989-01-10
▒ 시 대 : 고려시대(9C-12C)
▒ 소 재 지 : 용인시 이동면 서리 산23-1
▒ 규 모 : 북쪽구릉 80×20m 남쪽구릉 70×30m 높이 5m
이 가마터는 우리나라 유일의 고려초기 백자요지로 1960년대에 발견되어 학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본 가마터 유적은 해발 350m인 함박산 의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끝에 위치한다. 현재 갑발 등의 가마 폐기물로 이루어진 퇴적이 2개의 거대한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데, 북쪽 구릉이 80×20m, 남쪽구릉 70×30m, 높이 5m 이상에 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결과를 보면, 본 가마터는 9세기 중반경부터 12세기까지에 걸쳐 청자와 백자를 생산했던 곳으로, 특히 고식 청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 해무리굽 사발」 등의 백자를 구운 가마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양 퇴적구릉 사이에 골짜기에서 찾아낸 가마는 돌·벽돌·진흙 및 갑발들로 축조한 여러 기의 가마가 중첩되어 있으며, 이들은 초기의 벽돌가마와 후기의 진흙가마로 대별된다.
이중 벽돌가마는 국내에서 처음 밝혀진 것이다. 가마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반지하식으로 만든 경사진 등요이지만, 가마바닥에 갑발을 깔아서 수평을 유지케 한 계단식 가마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규모는 후대로 내려올 수록 커져 최종 진흙가마의 경우는 길이가 83.2m에 달한다. 이 대규모 가마에서는 27개의 출입문에 확인되었다.
갑발과 가마벽편, 자지파편 등 가마의 폐기물로 이루어진 퇴적구릉은 높이가 6m 가량이며, 4개의 자연 퇴적층위로 구분되었다. 이들 층위는 퇴적의 가장 아래 부분에서 부터, 고식청자→ 고식백자→ 「 해무리굽」백자 → 조질백자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출토 유물로는 고식의 청자, 백자를 비롯하여 해무리굽 백자, 청회백자류, 순청자 및 극소량의 상감청자등이 있다. 기형으로는 완, 발이 주로 많고, 기타 대접·접시·유병·향완·주전자·탁잔·장고 등 다양하다. 본 가마터는 초기 벽돌가마 운용시의 정세질 고급백자 생산시기와 후기 진흙가마의 조질 백자시기로 구분된다. 이 분기점은 대체로 11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데, 강진·부안 등에서 관요적인 가마가 발달하게 됨에 따라 본 가마는 지방가마로 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마터는 통일신라말기~고려전기에 걸친 도자사 연구에 획기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고려백자의 발생 및 전개상황을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특히 해무리굽 백자를 소성하던 시기의 층에서 원시 상감청자 장고편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상감기법의 발생시기를 100년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하였다.
용인시 용인대로 73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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