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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까지 중국영토?’ 동북공정 VIRUS 확산

이슈&화제

by 윤재훈 2008. 5. 2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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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까지 중국영토?’ 동북공정 VIRUS 확산


인터넷 통해 중국인 역사 왜곡 ‘세뇌화’… “고구려 중국사” 확대 재생산 단계로 넘어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학자들의 ‘담론 차원’을 넘어 인민에 대한 ‘세뇌화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2002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5년간의 동북공정 사업기간이 ‘부팅’ 단계였다면 지금은 ‘바이러스 실행파일’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컴퓨터의 e메일 주소록을 뒤져 무차별적으로 바이러스 첨부 e메일을 전송해 컴퓨터를 감염시키는 ‘님다 바이러스(nimda virus)’처럼.

 중국 학계가 논증, 분석을 통해 생산한 동북공정 이론이 지방정부와 박물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일반인에게 확산되고 있다. ‘세뇌화 후폭풍’도 예고된다.


▲ 중국 포털사이트 톈진구이빈왕에 실린 지도(왼쪽)와 미국 미니애폴리스 미술관의 지도(오른쪽)를 비교하면 당나라 영역 차이가 확연하다.


 중국 포털사이트 톈진구이빈왕(天津貴賓·www.tjvip.cn)의 시대별 역사 코너. 중국 삼황(三皇) 시대부터 신해혁명까지 역사 설명과 함께 등장하는 지도 가운데 당나라 지도에는 신라를 제외한 고구려, 백제가 당나라 영토로 표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박스 안 지도 참조).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일부 지역도 당의 영역이며, 동북아시아에서 당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발해는 빠져 있다.


▲ 중국 교과서에 실린 진나라 지도. 만리장성이 고조선 영토까지 확장돼 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 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s)에 있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길게 뻗은 당나라 지도와는 대조적이다. 진나라 지도에도 진시황제가 축조한 만리장성이 현재의 북한 영토에 걸쳐 있다.


▲ 랴오닝성 박물관의 전국시대 지도(왼쪽). 연나라가 한반도 북부까지 차지한 것으로 표시됐다. 5.고구려를 중국 동북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라고 설명한 지안박물관의 머릿돌(오른쪽).


 오프라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랴오닝(遼寧)성 박물관에 내걸린 전국시대 초기 지도는 한반도 북부까지를 영토로 표시해놨다. 만리장성이 북한 청천강과 대동강 하구에까지 이르렀다는 주장과 함께. 이 지도는 중국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 ‘고조선사=중국사’로 인식하게 만든다.


▲ 용담산성의 안내표지판.‘고구려 사람은 조선인이 아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고구려가 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을 때 동북쪽 끝에 만들었던 용담산성의 현재 안내간판에는 ‘고구려 사람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高句麗人幷非朝鮮人)’라는 말이 적혀 있다. 지린(吉林)시에서 약 7km 떨어진 이 산성은 중국이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곳. 지린성 정부는 ‘고구려는 상나라 사람들이 건국했거나 상나라 사람들이 중원 정복 전후 동북쪽으로 옮겨간 지파’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주선양 총영사관은 이 안내간판이 우리나라 정부의 항의로 총 6개 가운데 4개가 철거됐다고 밝힌 바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 박사(고구려사)는 “동북공정은 논리적 근거와 관계없이 중국인 머릿속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그들의 역사인식을 왜곡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동북공정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안내문이나 박물관 패널 등을 통해 ‘고구려는 중국사’라는 역사인식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 등에 따르면 동북공정은 동북3성 가운데 고구려와 발해 유적이 가장 많은 지린성 퉁화사범학원이 주축이 돼 여러 연구기관들이 집중 연구하며, 현재는 지방정부와 기관 또는 대학으로 옮겨져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동북공정 연구결과는 학술잡지 ‘동북사지(東北史地)’에 실려 확산되고 있는데, 이 잡지사 사장은 중국 공산당 지린성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인 지아푸여우(張福有)다.


 국방대 안보대학원 유동원 교수(중국 전공)는 “권력의 정당성이 약한 중국 정부로선 (동북공정 인식 확산이) 싫진 않을 것”이라며 “국민의 정체성 결집 도구로 만든 동북공정이 누리꾼(네티즌)들을 통해 통제되지 않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 박사 인터뷰… “中 초기 주장 심화 … 오류 시정 작업 지속해야”


- 동북공정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생각해보라. 한번 세상에 나온 역사서는 없앨 수 없다. 연구물들은 선행연구 자료가 되고 신진 연구자들이나 학생, 일반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진화하면서 확산되는 것이다. 55개 소수민족과 한족의 결합으로 이뤄진 통일적 다민족국가로서의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동북공정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 사업 기간은 끝나지 않았나.
 “동북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지역의 고대사부터 미래사까지를 모두 연구대상으로 하는 동북공정은 연구비를 나눠주고 연구를 진행시킨 뒤 그 결과물을 수합해 출간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사업기간이 종료됐다는 것은 연구비 지급이 끝났다는 의미지, 제반 일들이 모두 완료됐다는 뜻은 아니다.”


- 현재 중국 학계의 움직임은?
 “초기에 제시했던 주장들을 보완, 심화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논문 구성이 엉성했던 이전과 달리, 최근에는 차분히 논증하고 분석한 글들이 나오고 있으며 연구자 수도 늘었다. 예전에는 ‘삼국사기’ 같은 우리 측 사서를 참고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비판을 하거나 사료 분석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
“과학적, 학문적 차원에서 오류를 시정하는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중요한 점은 중국의 자의적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우리 학계가 고구려사나 고조선사 연구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분석틀과 이론을 정립하고 연구를 심화해야 한다.”


- 학계 이외에는….
“현재 우리나라, 북한, 중국이 공유하고 있는 고구려 유적의 경우, 세 나라가 함께 유적을 조사하고 보존책을 강구하면 역사적 갈등 해소와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외교적 협상이 필요한 부분이다. 사회적으론 민족에 대한 개념을 새로 정립할 필요도 있다.”


- 민족 개념?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현대 중심’으로 역사를 보기로 했다. 현재 영토 내의 모든 민족은 하나라는 발상, 일종의 ‘저수지론(論)’이다. 반면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라는 민족 개념이다. 고구려와 함께한 말갈도 같은 민족이 아니다. 외국인 며느리 같은 ‘코시안(Kosian)’ 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사회 자체가 다민족화됐는데, 출발 시의 구성원 중심으로 민족 개념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다.”


- 역사 분쟁인데….
“그렇다. 역사 분쟁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긴 호흡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 정체성 상실은 상당히 빠른 시간에 진행되지만 재정립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적 관심이 고조됐을 당시 우리나라 중·고교에서 역사 수업시간이 늘었고, 한국사는 독립과목이 됐다. 대학은 입시에서 역사 비중을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줄자 대학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기사제공= 주간동아/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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