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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chosun] 혼돈의 여름, 우리에게 절실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슈&화제

by 윤재훈 2008. 6. 2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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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chosun] 혼돈의 여름, 우리에게 절실한 리더십을 생각한다
특집ㅣ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1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장열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와 함께 ‘촛불 정국’의 도화선이 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지난 6월 26일 재개됐다.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이명박 정권 퇴진’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등 정부와 시위대의 대치가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이날 한승수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며 “우리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지만 ‘고시 철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정 공백과 갈등의 끝이 어딘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 혼란과 위기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취임 100일 만에 두 번씩 대국민 사과를 한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리더십을 되살려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대국민 신뢰를 회복해 ‘촛불’을 끄고 통합과 전진을 이뤄내지 못하면 5년의 임기는 대통령이나 국민 모두에게 암담하고 고통스런 시간일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기간 약속했던 개혁 어젠다들도 리더십의 추락과 함께 떠내려갈 위기에 몰렸다. 노무현 정권 5년간 리더십의 공백 속에 혼돈과 갈등의 시간을 보낸 국민들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추락한 리더십을 되살려낼 수 있을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무현 5년에 이어 압도적 지지를 받고 탄생한 이명박 정권마저 속절없이 겪고 있는 이 ‘리더십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혼돈과 위기의 2008년 여름, 대한민국의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 우리는 제대로 된 리더를 갖지 못하는 걸까_전문가 6인의 말


우리 사회는 왜 제대로 된 정치 리더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리더로 올라선 개인의 자질 문제인가, 리더를 발굴하고 키우는 시스템의 문제인가. 아니면 리더를 대하는 구성원의 문제인가. 전문가 6인으로부터 의견을 들어보았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


정당과 유권자의 일체감 부족이 근본 원인
20~30년은 지속될 정당 만드는 게 급선무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충성심·일체감 부족이 ‘정치 리더 부재’의 근본 원인이다. 과거 DJ와 YS 시절만 해도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며 충성심을 보여준 유권자층이 있었다. 그 후로는 어느 정당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충성심을 보이는 지지층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의 잦은 이합집산이 정당 일체감을 낮추는 큰 원인이 됐다. 유권자와 정당 사이에 강한 연대감이 없다 보니 리더와의 관계도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리더 자체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50~60대 리더들의 민주의식과 윤리의식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30~40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민소득 5000달러 시대의 민주주의에 익숙한 리더가 2만달러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이 요구하는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다수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엇박자가 크게 나고 있는 것은 이전 정권에 비해 리더의 세대가 높아진 탓도 크다.


리더십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구조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두 대통령 모두 취임 후 ‘대통령당 만들기’부터 시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당(分黨)을 강행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총선 ‘밀실 공천’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다. 이명박 정권 취임 초 35%에 달하던 한나라당 고정 지지율도 이런 과정을 통해 15%나 떨어져 나갔다.


결국 10년, 20년, 30년 가는 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편만 챙기는 식의 단기적인 ‘뺄셈의 정치’로는 제대로 된 리더가 탄생할 수 없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


철저한 검증 없이 ‘사건’에 업혀 등장한 리더들
20년 이상 경력 통해 인정 받을 메커니즘 필요


과거의 지도자는 물리적 힘에 자신의 의지를 실어냈으면 족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태어날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 코디네이션(coordination), 즉 조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에게 ‘정치지도자’라고 불리려면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이해·조정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 발짝 앞선 비전을 얘기하며 조정의 기술을 통해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나는 80점 정도를 줬다. 지금은 40점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반전(反轉)의 가능성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 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은 항상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큰 사건이나 프로젝트를 업고 등장했었다. 그래서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이라면 국회에서 20년 이상 정치 커리어를 쌓으면서 충분히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메커니즘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치 제도의 문제인데, 역대 한국 대통령 선출 과정에서 보여준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내각책임제가 정치 리더의 역량을 좀더 잘 검증할 수 있는 제도일 수 있다. 충분한 검증 없이 바로 ‘판’에 뛰어드는 것은 비단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시민 단체나 학계, 경제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정당 정치의 경험도 없이 바로 정치 일선으로 진입하는 것도 문제가 크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진정한 리더 키워낼 시스템 자체가 없어
학교부터 사회까지 올바른 선택법 가르쳐야


우리에겐 아직도 리더를 키워내는 제도적 시스템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리더는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반장도 선출해 보지 못하고 임명만 하던 시절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동안 민주적 토론도 별로 해보지 못했고 리더십에 대한 훈련의 장도 없었다. 리더라고 할 만한 역할 모델(role model)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공공 부문에서의 리더를 보자.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대통령이 됐든 국회의원이 됐든 맑고 깨끗한 멸사봉공의 자세로 일관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는가. 도덕성이나 능력, 비전이나 업적 모든 분야에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한 면을 가진 인물은 더러 있었지만 비전과 실천적 추진력, 국민의 참여와 피드백(feedback)을 받으면서 실행하는 참여적 민주적 리더십은 없었다. 자기 헌신과 열정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았던 리더도 기억에 그리 남지 않는다.


최근 적잖은 기업에서 리더십 전문센터를 세워 리더십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정치나 공공 리더십 분야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중앙공무원교육원 등에서 이뤄지는 낡아빠진 구시대적 교육과 방법론으로는 안 된다. 학교부터 사회까지 제대로 된 리더를 선택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나와야 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리더에 대한 신화적 믿음은 ‘미신’과도 같아
우리 성향은 대세 추종적…각자 제자리 지켜야


리더가 어떤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출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한국 사람들은 리더에 대한 신화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본다.


한국 사람들의 기본적 특성은 대세 추종적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대세가 어떤 식으로든 정해지면 리더나 리더십에 대해 별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명분을 중요시하는 것도 바로 이 대세 추종성향 때문이다. 대세가 분명하면 리더에 대한 문제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리더십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은 대세가 불안해지거나 바뀔 때다. 한국에서 리더는 대세를 먼저 선점하고 어떤 가치를 부여해 대세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의 중대한 고비에는 ‘바람’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바람에 의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결과가 나오곤 했다. 정치학자나 분석가들은 사람들이 바람이나 감성에 휩쓸린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대세에 따르는 것이다. 대세를 비교적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론조사 결과다.


국민들은 스스로 가진 대세 추종성향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대세에 휘둘리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일을 해나가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문제를 영웅적인 리더가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할 때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리더는 국민의 이런 성향을 정확히 알고 끊임 없이 대세를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하다 보면 결국 대세에서 유리된다. 리더십의 성공 사례로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을 많이 언급한다. 레이건은 국민이 원하는 대세에 대해 빠르고 정확하게 짚어 얘기했다.

강지원 매니페스토본부 상임대표


수직적 리더십 시대 살아와 혼란스럽지만
수평적 새 리더십 뿌리 내리도록 도와야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그 무엇을 연상한다. 왕조 시대와 독재 시대를 살아오면서 쌓여온 생각들이다. 세계는 획일성의 시대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변화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수직적인 리더십만으로는 안 된다. 수평적 리더십이 반드시 가미돼야 한다.


과거 당파 싸움을 돌이켜보면 결국 인물 중심의 싸움이었다. 수직적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들이 치고받고 한 것이 바로 당파 싸움이었다. 3김 시대도 따지고 보면 ‘3김 당파’의 시대였다. 그런 리더와 함께 최근세사를 살아온 우리 국민에게 지금은 뚜렷한 리더가 보이지 않는 세상일 수 있다.


새로운 리더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 지시적이지 않고 설득적인 사람, 대결적이지 않고 화합적인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 문제는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둘러싸인 구세대는 가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될 것이다. 젊은 세대는 이미 이런 새로운 리더십을 연습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방향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운 점도 없지 않지만 기성 세대에 비해 훨씬 수평적이다. 이들을 잘 돕고 훈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학생을 징계 처분할 때 학생 대표 스스로가 처벌 수위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처럼 작은 부분에서 합의를 도출하도록 하는 노력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권력 구조, 정부 형태도 바꿔야 한다. 제왕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개인 이익이 충돌하는 때…조정의 리더십 필요
이끌고 가르치려는 권력자는 통하지 않는다


산업사회에서는 집단적 이익이 충돌하는 반면 후기산업사회, 시민사회에서는 개인적 이익이 서로 충돌한다. 후기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국민들은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는 부분에 있어서 수없이 모였다 흩어진다. 예를 들어 임대아파트 건설 현장은 개인적 이익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집단적 이익이 대립했을 때 그것을 제도권에서 풀기 위해 탄생한 것이 정당이다. 독일의 사회민주당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정당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는 때를 맞게 된다. 정당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오는 상황을 맞기 쉽다. 지금의 사회 구조와 정당 시스템이 잘 맞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 이익의 갈등 상황에서는 조정자로서의 리더가 필요하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들여다보면 리더보다 조정자를 뽑는 과정으로 읽혀진다. 민주당 후보인 배럭 오바마도 미국 경제의 양극화와 흑백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소에 익숙해진 국민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이끌어가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 정책의 집행도 그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민이 이런 식의 리더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권에서 사회의 변화에 그만큼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세기를 대의민주주의의 시대”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인터넷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밀려드는 봇물 같은 이야기와 요구를 모두 담아 대표할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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