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물안개 올라온 농암종택 풍경은 그 옛날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라면 너도 그리고 나도 시 한 수 술술 읊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손요와 함께한 안동 농암종택에서의 하룻밤.
농암종택으로 가던 날 가송리에는 비가 내렸다. 눈인 듯 흩날리더니 금세 비로 변해 온 사방을 적셨다. 종택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청량산은 운무로 휘감기고 살얼음 사이로 흐르는 낙동강은 밤새 흐느꼈다. 종택에서의 밤은 길고 길다.
아직 6시도 안 됐는데 사방이 먹통 같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정지된 시간,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두툼한 솜이불 밖으로 목만 빠끔히 내놓고 몸을 지진다. 꽃잎이 한 장 한 장 수놓인 옥색 이불을 보고 손요, 예쁘다 예쁘다 노래를 한다. 톡톡톡 처마를 따라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오길 잘했죠?” 하는 에디터에게 “한국에선 제주도가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이제부턴 안동이에요” 한다.
‘어르신, 계세요?’ 근처 매점에서 사온 맥주 한 병을 들고 주인 내외가 살고 있는 안채문을 두드린다. 고택의 주인 이성원 씨는 우리에게 ‘어부가’로 알려져 있는 조선시대 학자 농암 이현보 선생의 17대손이다. “굉장히 유명하신 분의 자손이어서 좋겠어요” 하고 말하는 손요의 천진난만한 한국말이 귀엽게 느껴졌던지, ‘아이고~나는 <미녀들의 수다>에서 손요 씨가 젤로 괜찮던데, 여기까지 오니 그게 좋지’ 하신다.
산솥밥 먹는 즐거움"딸랑~딸랑~ 8시예요. 식사하세요!" 종택을 지키는 농암 17대 이성원 씨가 작은 손종을 흔들며 손님들을 불러 모은다. 기다란 상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 오늘 처음 만난 이들이지만 숨김없이 드러낸 맨얼굴이 낯설지 않다. 명절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 같다. 한때 외국 대사관의 주방을 책임졌던 이모할머님이 한 상 가득 차려낸 음식은 찬거리만 15가지가 넘는다. 유명한 간고등어, 콩가루를 버무려 만든 안동식 냉잇국, 더덕무침 위에서 젓가락이 길을 헤맨다. “손요 씨, 요 보푸리 한번 먹어보쇼. 안동에서는 손님상에 이게 빠지면 푸대접했다는 말 나오지.” 일일이 손으로 두들겨 고운 가루처럼 만든 복어 포 보푸리는 안동만의 별미다.
한 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기는 참으로 오래만이다. 1인 1자녀가 법으로 정해지면서 소황제, 소황후처럼 홀로 자라난 오늘의 중국 젊은이들에게 이런 자리는 한국 젊은이들 못지않게 생소한 장면이다. 안주인이 커다란 김치를 손으로 쭉 찢어 하얀 쌀밥 위에 올려준다. 많이 먹으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는 안주인의 말에 “많이 먹고 있어요. 배불러요” 하니 “손요 배는 조막만 한갑다” 하시며 웃으신다.
손요 그리고 <미녀들의 수다>안동으로 향하는 차 안, 그녀에게 한 통의 컬러메일이 도착했다. 숯 검댕이 눈썹을 단 꼬마 눈사람을 찍은 사진 한 장, 사유리에게서 온 문자다. “하여간 엉뚱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글자 하나 없이 엽기적인 사진만 달랑 보내와요.” <미녀들의 수다> 친구인 사유리는 손요와 궁합이 잘 맞는다. 둘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을 좋아한다.
그녀와 <미녀들의 수다>와의 만남은 아주 우연하게 찾아왔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방송국에서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추억 만드는 셈, 출연해보지 않겠냐고요. 처음엔 방청객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방송국 가서 손뼉 치는 게 무슨 추억거리냐고 안 하겠다고 했어요. 결국 친구 성화에 못 이겨 오케이를 했는데 면접까지 봐야 한다잖아요. 한국은 손뼉 치는데 면접까지 봐야 하나, 별일이다 생각하고 나간 게 <미수들의 수다> PD님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그녀는 운이 좋았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똑 부러진 성격 덕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이 물어요. 요즘 TV에 많이 안 나오던데 <미녀들의 수다> 말고 어떤 프로 하세요? 하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색해요. 전 연예인이 아니니깐 TV에 안 나오는 게, 그게 정상인데 말이에요.”
떠나는 즐거움철도 공무원인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부터 중국 대륙 곳곳을 내 집처럼 오갔다. 또래친구들 중에 저만큼 여행을 많이 한 친구는 없었어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나 홀로 여행을 시작해서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요. 필리핀, 캐나다, 베트남, 홍콩, 태국 등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태국이다. “추운 건 싫어요. 태국은 따뜻하고 사람들도 착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아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코끼리를 마음껏 볼 수 있고요.”
그녀의 꿈은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 학대받는 코끼리를 본 적이 있어요. 머리에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코끼리를 보고, 이다음에 꼭 야생동물보호협회 같은 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노력의 결실로 그녀는 최근 <이것이 차이나(로그인)>라는 책까지 냈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다 얘기하지 못했던 중국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 한국을 떠나 내년쯤 ‘또 한번의 떠나는 즐거움’을 계획하고 있다.
'어부가'로 이름이 알려진 조선시대 학자 농암 이현보(1467~1555)의 종택. 경북 안동 도산면 가송리에 위치해 있다. 일반인들에게 별채와 사랑채, 대문채 등을 개방해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 별채의 작은 방은 5만원, 가장 인기 있는 긍구당은 4인 기준 10만원이다.
054-843-1202
안동찜닭 골목
손요에게 ‘안동’으로 가자고 했더니 ‘안동찜닭?’ 하고 묻는다. 중국 음식과 비슷해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라는 찜닭을 본고장에 가서 먹어보았다. 안동 구시장 골목에 형성된 찜닭골목의 ‘위생통닭’은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이 특징. 택배비 4000원을 추가하면 서울까지 배달이 가능하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손요, 재빨리 명함부터 챙긴다.
054-852-7411 ㅣ 안동찜닭 1만8000원, 마늘닭 1만2000원
하회된장마을
하회마을 초입에 위치한 하회된장마을은 4000여 개의 된장항아리가 줄지어 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안동에서 자라는 콩을 이용해 안동 풍산 류씨 양반가의 전통 비법을 재현해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을 만들고 있다. 장작불을 이용한 가마솥에 콩을 삶는 모습을 보며, 그녀 직접 팔을 걷고 거든다.
1577-5007 www.denjang.co.kr
안동한지공장
전국 한지 생산량의 30%가량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닥나무가 한 장의 한지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탈만들기, 한지공예품 만들기, 한지만들기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