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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선생묘

이슈&화제

by 윤재훈 2008. 4. 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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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로 근대사회에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반계(磻溪) 유형원(1622∼1673) 선생의 묘소이다.

광해군 14년(1622)에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5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7세에는 서경을 읽고 20세에는 문장이 뛰어나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선생은 단 한번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을 뿐 관직에는 관심이 없었다. 효종 4년(1653)에 32살의 젊은 나이로 전라북도 부안에 내려가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그의 저서『반계수록』에 의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자영농민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선생은 실학을 학문의 위치로 자리잡게 하였으며 평생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실학의 선구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묘역 안에는 혼이 머물고 간다는 직사각형의 혼유석(魂遊石)이 마련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문인석 1쌍이 배치되어있다. 묘 주위로는 반원형으로 담이 둘러져 있다.

유형원(1622∼1673) 선생은 본관(本貫)이 문화(文化)이며, 자(字)를 덕부(德夫), 호(號)를 반계(磻溪)라 하였다. 선생은 조선(朝鮮) 광해군(光海君) 14년(1622) 서울에서 출생,5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7세에는 서경(西經)을 읽고, 20여세에는 문장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선생은 조부의 뜻을 받들어 단 한 번 과거를 치러 진사(進士)가 되어 선비로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였을 뿐, 관직(官職)에 관심이 없었다. 선생은 효종(孝宗) 4년(1653) 전라도(全羅道) 부안(扶安)에 내려가 일생을 농촌에 묻혀 제자를 양성하며 농촌 사회의 현실을 스스로 체험해가면서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야인(野人)으로 농민 생활 개선을 위하여 주력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제도를(制度) 근복적으로 개혁(改革)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실학(實學)의 선구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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